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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가 천사들과 부른 기적의 하모니

절망의 공간에 희망을 담다
슬럼가 천사들과 부른 기적의 하모니

케냐와 인도 슬럼가 아이들은 오직 굶지 않기를 희망하며, 꿈도 미래도 없는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쓰레기 더미에서 돼지와 함게 먹을 것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아이들 앞에 빵이 아닌 희망을 한 보따리 안고 나타난 사람이 있으니, 바로 노래하는 한국 아저씨 김재창 성악가이다. 도레미도 모르는 아이들,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던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친 일은 사랑의 마음을 일깨우고, 미래를 꿈꾸게 하였다. 케냐와 인도의 슬럼가 천사들과 함께 부른 기적의 하모니, 그 감동의 이야기들을 들어보자.
음악을 맛있게 전하는 음악요리사를 꿈꾸다
그가 음악과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관악부에 들어가면서부터이다. 당시에는 트럼펫과 호른 주자로 활동하였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교회에서 성가대를 지휘했다. 대학교 3학년 때 교수님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성악을 전공으로 바꿨다. 6년간의 고교 음악교사로 교편을 잡기도 했다. 그 후 이탈리아 유학길에 오르며 뒤늦게 성악 공부를 시작하였지만, 로마 콘설바토르 수석 졸업에 3번의 국제 콩쿠르 우승과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의 활동 등 ‘나’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는 대중들에게 클래식을 맛있는 음식처럼 쉽게 전달하는 음악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오페라를 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차에, 아프리카 어린이 합창단의 지휘자로 제의를 받게 된다. 처음에 그는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지휘를 맡은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가장 비참한 아이들이 가장 화려한 무대에 선다는 것, 그거 굉장한 반전이잖아요. 그 반전의 중심에 제가 있다는 생각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지요. 처음엔 오페라 일도 놓지 않고 양다리를 걸치려 했어요.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요.”

쓰레기 마을에서 탄생한 기적, 지라니 합창단
그가 그렇게 제의를 받고 큰 기대를 갖고 간 케냐의 고로고초 마을은 수도 나이로비 전역에서 매일 수백 톤의 쓰레기가 유입되는 곳이다. 고로고초는 스와힐리어로 ‘쓰레기’라는 뜻이다. 거리는 흘러내리는 쓰레기 침출수로 질척거렸고 여기저기 쓰레기 타는 냄새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쓰레기 산을 지나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낡은 양철집들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곳에 학교가 있었다. 바로 이곳이 합창단을 시작해야할 장소였다. 한국에서 케냐로 향할 때만 해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처럼 아름다운 대자연과 그 속에서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합창소리를 상상했던 그는 완전히 속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험난한 과정의 시작에 불과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음악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고로고초 아이들에게 ‘도레미’로 시작하는 서양식 음계를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계에 부딪혀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눈빛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 아이들이 어떤 비전을 갖고 뭘 열심히 해본 바가 없어서, 이걸 깨우는 작업이 힘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저 혼자 몸부림칠 때가 많았죠. 너무 힘들어서 ‘난 음악가인데, 음악만 하고 싶은데, 이아이들을 데리고 하는게 무슨 음악인가? 노골적으로 이건 노가다다 음악이 아니다’ 이런 생각도 했었죠.”

절망에서 만들어진 기적의 하모니
그러던 어느 날, <에델바이스>를 부를 때였다. 아이들이 정확히 화음을 내고 있었다. 지휘를 하던 그는 손을 순간 멈추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들과 생활한지 3개월 만에 처음 들어 보는 화음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아이들은 빠르게 성장했다. 스와힐리어로 ‘좋은 이웃’이라는 뜻의 ‘지라니’합창단을 결성하고 4개월 만에 아이들은 11곡을 소화해 냈다. 전혀 노래하지 못할 것 같던 아이들이 11곡이나 되는 노래를 끝가지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적은 멀리 있는게 아니었다. 4개월 만에 열린 첫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사람들은 합창단의 아름다운 노래에 찬사를 보냈고 이를 발판으로 이듬해인 2007년 6월에는 대통령궁에서 공연을 가졌다. ‘대통령 앞에서 노래한 슬럼가의 아이들’로 케냐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곧 날개를 달았다. 목표는 전 세계였다. 한국을 시작으로, 뉴욕과 시카고, 필라델피아 공연까지 지라니 합창단의 무대를 지켜본 사람은 전 세계 7만 여 명에 이른다. 예일대 공연에서는 여섯 번의 기립박수와 다섯 번의 앙코르 무대가 끝난 후에야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빵보다 절실했던 희망은 기쁨이 되어
맑게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노래는 아름답다.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눈빛 어디에도 쓰레기 더미에 쉽싸인 절망은 없다. 공연을 하다 보면 노래를 듣고 그 절절한 감동에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합창단 아이들 역시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자주 흘린다. 맨 처음엔 노래 부르는 것이 힘들어서 우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기쁨의 눈물이었다. “쓰레기 더미를 뒤져 끼니를 해결하고 사람들 앞에서 이름을 말하지도, 눈빛을 맞추지도 못했던 자신들이 노래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는 거예요. 아이들 스스로 자신감과 가능성을 가지게 된 거죠. 기대 이상의 변화가 합창단은 물론 케냐 나이로비의 쓰레기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꿈은 살아 움직인다. 절망의 늪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았던 아이들은 노래를 통해 가능성을 보았다. 결국 이 가능성은 희망이 되고 에너지가 되어 절망의 마을을 기쁨의 마을로 바꾸어놓았다.

케냐에 심은 바나나는 인도 바나나 합창단이 되어
4년 남짓한 기간 동안 케냐 지라니 합창단을 이끌며 시련과 감동의 시간을 보낸 그는 생각지 못한 복병으로 합창단 일을 정리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새벽. 기도 중에 인도 슬럼가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소외된 아이들을 희망의 무대에 세우라는 응답이 왔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응답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케냐에서 보낸 4년의 세월을 기억나게 하셨고, 또 다른 땅에 희망의 씨앗을 뿌려 꽃피우게 하고 싶은 마음을 불어 넣으셨다. 그러던 중 『신도 버린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고서는 인도에 관심이 생겨났다. 책을 읽으면서 카스트 제도에도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 즉 ‘달리트’라는 계급의 사람들이 받는다는 계급차별과 인권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이들을 돕고 싶었다. 소망도 없이 살아갈 그 ‘달리트’의 아이들에게 음악을 통해 희망을 다시 한 번 보여 주고 싶었다. 그는 기도응답에 순종하며 다시 인도의 슬럼가로 옮겨 새로운 희망을 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인도 뭄바이에서 남동쪽으로 120km에 위치한 뿌네 빈민가 지역의 아이들과 함께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인도 합창단의 이름은 ‘바나나’이다. 열대지방인 케냐에 머물 때 연습실 앞에 심었던 바나나가 힌디어로는 ‘세우다, 변화시키다’를 의미하는 것을 알고 주저 없이 정한 이름이었다. 케냐에 심었던 바나나는 변화의 메세지가 되어 이제 인도에 다시 심겨졌다.

노래는 아이들을 변화시켰다. 그들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쓰레기 속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도둑질과 마약, 폭력에 빠져 있던 아이들은 이제 자신의 삶을 생각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을 품게 됐다. 그리고 점점 그 희망은 확신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제 그는 삶의 목표를 ‘나’에서 ‘우리’로 바꾸었다. 음악을 녹여 희망을 만드는 일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값지고 특별한 경험이라 말한다. 케냐의 지라니에서 인도의 바나나까지, 복음의 땅 끝에서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아이들을 찾아 음악을 통해 희망과 기적을 일구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아이들의 꿈을 이뤄주고 싶다고 하였다. 슬럼가에 울려 퍼진 희망의 노래는 기적이 되어 그렇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동익 기자 월간 아름다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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