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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이번엔 인도 빈민촌 아이들과 희망을 노래하렵니다”

“이번엔 인도 빈민촌 아이들과 희망을 노래하렵니다”  2010년 7월 12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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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뭄바이에서 동남쪽으로 약 120㎞ 떨어진 뿌끄시(市)의 빈민촌 람테끄디. 다닥다닥 붙은 판자 집,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시간에 폐품을 주워 고물상에 파는 아이들, 마을 한 복판으로는 돼지 등 가축의 오물이 섞여 흐르는 개울이 있고, 여인들은 그 물에 빨래를 하는 마을. 네 계급으로 나뉜 카스트제도의 가장 낮은 천민계층(슈드라)보다 못한 최하층 신분인 ‘달리트(불가촉 천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지휘자 김재창씨가 올해 3월 인도 빈민촌 어린이로만 구성된 ‘바나나어린이합창단’을 만들기 위해 찾아간 그 곳 풍경이 그러했다고 한다.

“달리트에 속한 아이들은 사람 취급을 못 받는대요. 상위 계층 소녀에게 연애 편지를 썼다는 이유로 폭행당하고, 기차에 내던져져 죽어도 경찰이 묵인할 정도라더군요.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더욱 꿈을 심어줘야겠다는 확신이 섰죠.”

케냐의 빈민 어린이들로 구성된 ‘지라니어린이합창단’을 지휘했던 김재창씨가 이번에는 인도 어린이들에게 희망의 노래를 가르치러 떠난다. 사전 현지조사차 3월에 인도를 다녀온 그는 이미 단원을 50명 정도 뽑았고, 시민과 지인들의 기부로 마을 인근 교회에 작은 연습실도 구해둔 터다. 12일 서울 당산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2008년 가을께 우연히 인터넷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는 달리트 계급에 관한 글을 읽고 가슴이 아파 준비했다”면서 “순수하고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어린이들을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지구촌 곳곳의 가난한 어린이에게 노래로 꿈을 심어주기로 결심한 것은 2006년 8월 NGO단체서 활동하는 지인에게서 ‘가난한 아프리카 어린이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만들어보자’는 권유를 받으면서부터다. 서울시립오페라단과 국립ㆍ사립 오페라단에서 프리랜서로 공연하다 1999년 일반 공연과 자선 공연을 병행하는 중창단 ‘아마치솔리스트앙’을 만들어 활동하던 때였다. “넓은 평원을 무대로 울려 퍼지는 합창단의 노래 선율을 생각하니 낭만적이고 보람도 있을 것 같았어요.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의 기부로 무작정 아프리카로 갔죠.”

그렇게 멋 모르고 찾아간 첫 목적지는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외곽 빈민촌 ‘고르고초(스와힐리어로 ‘쓰레기장’이란 뜻)’였다. 이름처럼 곳곳에 쓰레기가 수북이 쌓여 파리떼가 우글거렸고, 쓰레기 태우는 냄새가 진동했다. 노래를 부르려면 호흡이 길어야 하는데, 공기가 너무 안 좋았다. “제가 자극적인 냄새나 꽃가루 등에 의해 코가 막히는 알레르기성 비우성비염이 있거든요. 처음엔 정말 힘들더군요. 그래서 좀 떨어진 곳에 마을 교육관에 전기시설과 창문을 내 연습실을 만들었죠.”

합창단원을 모집하기 위해 학교, 마을, 교회를 찾아 다니며 아이들에게 노래를 시켜 목소리에 울림이 있는 아이들 80명을 뽑았다. 김씨가 이들에게 처음 가르쳐 준 노래는 비교적 쉽다고 생각한 에델바이스. 그런데 어린이들은 악보를 볼 줄 몰랐고,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음감이 없었다. 두 마디를 20번 가르쳤는데 똑같이 틀렸다. 아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노래 부르다 보니 모두 같은 곳에서 틀리는 거였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 점을 장점으로 여겼다. “아이들이 감각적으로 느낌이 통한다는 뜻으로 이해했어요. 순간적으로 지휘자의 움직임을 따라 올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매일 방과 후 2시간씩 악보도 없이 손짓 몸짓으로 연습했다. 그리고 그와 그의 아이들은 해냈다.

그 해 12월 23일 케냐 나이로비 국립극장에서 빨간색 마사이족 의상을 입고 첫 공연을 마쳤을 때 그는 울지 않을 수 없더라고 했다. 이후 케냐 정부 수립기념일 대통령궁 공연(2007), 한국 공연(07~09), 미국 워싱턴 뉴욕 시카고 순회공연(08년)까지 마쳤다. “저 열악한 처지의 아이들이 저리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것을 보고 나도 희망을 얻게 됐다”는 다짐과 격려가 쇄도했다.

“코 흘리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찾아올 때가 아직도 생생한데 결국 그렇게 해내더라고요. 돈 한푼 벌지 못해도 제 마음만큼은 정말 부자였어요.” 아이들은 점점 음악에 눈을 떴고, 2007년 합창단에 들어온 리건(11세)이란 소년은 이듬해 케냐전국학생콩쿨대회에 나가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빈민가에서 희망을 본 김씨는 큰 맘 먹고 올해 5월 ‘월드샤프’라는 국제개발단체를 차렸다. 책임감을 갖고 봉사해 반음을 올리는 ‘샤프(#)’처럼 세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겠다는 취지였다.

13일 인도로 떠나는 김 대표는 “‘도, 레, 미, 파…’부터 가르치려니 기대 반 두려움 반이라 (아이들을 가르치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다”면서도 자신감을 감추지는 않았다.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아이들이 늦어도 연말까지는 현지 공연을 하고, 내년 5월에는 한국에서도 멋진 공연을 꼭 선보일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기다려주세요.”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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