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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도 없는 아이들에 노래 가르쳐… 멍했던 눈에 빛 찾아와”

“먹을 것도 없는 아이들에 노래 가르쳐… 멍했던 눈에 빛 찾아와”

‘음악으로 세상을 반올림합니다’는 구호를 내건 국제구호단체 ‘월드샤프’의 김재창(56) 대표는

케냐의 나이로비와 인도의 뿌네(Pone)에서 슬럼가 아이들을 모아 합창단을 꾸려오고 있다.

빈민가에서 교육이나 의료, 복지 지원을 하는 게 아니라 노래를 가르치는 게 무슨 구호활동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빈민가 아이들로 합창단을 꾸리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당장 빵이 필요한 아이들이란 걸 부인할 필요는 없지만,

희망을 갖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것도 중요한 원조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슬럼가에서 가난에 지친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희망도 꿈도 꾸지 못하던 멍한 눈빛의 아이들이 노래를 배우면서 웃고 떠드는 밝고 행복한 아이들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 바로 이게 기적이구나 싶습니다.”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의 치마로사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뒤 이탈리아 존타 국제콩쿠르, 벨리니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이탈리아, 튀니지, 벨기에, 크로아티아, 한국 등 국내외 오페라 무대에 주연으로 서며 성악가로서 경력과

명성을 쌓고 있던 김 대표가 음악봉사로 빠져든 건 운명이었다. 원래 케냐로 나가기 전 국내에 있을 때부터 ‘아미치(Amici:친구란 뜻의 이탈리아어) 솔리스트 앙상블’을 만들어 음악치료가 필요한 정신병원 같은 곳에서 무료공

연을 해왔다.

그런 그에게 2006년 한 목사가 케냐 슬럼가에서 합창단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그는 코끼리와 기린이 뛰어 노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성량이 풍부한 흑인 아이들과 합창하는 게 낭만적일 것이란 순진한 생각에 선뜻 응낙하고 말

았다.

그러나 가난한 아이들로 합창단을 꾸리기는 쉽지 않았다. 2006년 8월에 도착한 나이로비의 고르고쵸 마을은 쓰레기 더미에 쌓여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고르고쵸는 스와힐리어로 쓰레기 더미란 뜻이었다.노래를 부르기 위

한 심호흡도 하기 힘들 것 같아서 조금 벗어난 교회교육관을 이용하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양철지붕의 건물은 안으로 들어가면 태양열에 익어 난로를 쬐는 것 같았다. 움직이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일할 줄도 모르는 인부들을

대신해 며칠간 직접 창문도 만들고, 전기시설도 설치하고 수도관도 땅을 파서 묻는 ‘막노동’을 했다.

그러나 더 힘든 난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합창단원을 모으는 일이었다.

“부모들은 ‘왜 이런 걸 하느냐’고 반대해요. 먹고살기도 힘든데, 노래하면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는 거죠. 몇 달을 설득해 200명을 모았는데, 학교로 오라고 다짐받은 날에 한 명도 안 왔어요. 다시 며칠을 설득했더니 7명이 나

타나더군요.”

아이들은 조금씩 모아나갔지만 노래를 가르치기는 더 힘들었다. “약속이나 시간 개념이 없다 보니 제때 나타나는 법이 없어요. 1시간 늦는 건 기본이고, 출석도 하고 싶으면 하는 식이에요.”

무엇보다 그를 지치게 한 건 아이들이 도무지 의욕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빈민가 아이들의 특징이 눈에 초점이 없고, 사람을 정면으로 쳐다보질 않아요. 요즘말로 ‘멍잡는’ 게 특징이에요. 지독한 가난 때문에 희망과 의욕을

버린 지 오래됐기 때문이지요.”

이런 아이들은 이끌고 창단 6개월 만인 2007년 2월에 한국 교민회 초청으로 첫 공연을 했다. 세계적인 합창단에 비하면 아이들은 어설펐지만, 음정과 박자는커녕 ‘도레미’도 모르던 아이들이 소프라노와 알토를 섞어 화음을 내

는데, 눈물이 날 뻔했단다.

3년6개월 정도 케냐에서 ‘지라니합창단’(지라니는 스와힐리어로 좋은 이웃이란 뜻)을 이끌던 김 대표는 후배에게 넘기고 2010년 인도의 뿌네로 갔다. 뭄바이에서 동남 쪽으로 170㎞ 들어가는 오지다. 인도에서의 합창단조직은

케냐보다 더 힘들었다. 인도 아이들은 케냐보다 더 의욕이 없었고, 약속도 더 지키지 않았다.

“인도에는 정말로 음악이 없어요. 아프리카보다 더 음악이 없어요. 처음에 슬럼가 아이들에게 시켜봐도 노래를 아는 아이들이 없었어요. 겨우 안다는 노래라고 해봐야 겨우 매일 아침 학교 앞에서 나오는 국가인데, 이것도 다

다르게 불러요. 고음도 저음도 없이 랩하듯 불러요.”

이런 아이들을 하나둘 불러모으고, 같은 음정을 수십 번 가르치기를 되풀이해 ‘바나나합창단’을 만들었다. 바나나란 힌두어로 ‘만들다’, ‘변화시키다’,‘세우다’라는 뜻이란다.

마침내 바나나합창단은 2011년 11월 한국을 방문해 공연했고, 올해 5월에도 재차 방문공연했다. 뿌네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뭄바이도, 뉴델리도 아닌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공연을 간 것이다. “아이들은 처음엔 기차

타고 한국에 가는 줄 알았대요.”

지금 인도의 바나나합창단은 성장을 거듭해 뿌네시의 꼰드르와 상비지역에 각각 60, 70명의 합창단원을 두고 있다. 세계 최빈국 슬럼가 아이들에게 노래로 희망을 전파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김 대표는 현재 캄보디아 프놈펜

에서 세 번째 도전을 준비 중이다. 올해 2월 프놈펜 외곽 메콩강 인근의 빈민촌을 방문하는 등 현지 답사를 했다. 프놈펜에선 어린이합창단을 꾸미면서 직업훈련학교도 설립해 볼 계획이다. 합창단원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기술

교육이 절실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캄보디아는 20년간의 내전으로 인구의 4분의 1이 죽는 바람에 인구의 70%가 40대 이하인 기형적 인구구조 속에서 아이들이 노동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최빈국 중 하나입니다. 우리와 동일한 내전의 아픔을 갖고 있는 캄보

디아의 아이들에게 노래로 사랑과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

김 대표는 왜 케냐의 빈민촌에서 일군 지라니합창단의 기적에 만족하지 않고, 인도의 뿌네로 갔다가 다시 캄보디아의 프놈펜으로 가려는 것일까.

“빈곤에 찌들고 무관심에 다친 아이들인지라 처음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말을 시켜도 대답도 못해요. 그러던 아이들이 노래를 배우면서 적극적이고 활달한 아이로 바뀌어 무대에서 천사처럼 합창하는 걸 보면 너무나 행복합

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4가의 월드샤프 사무실을 나오면서 건물 밖까지 배웅 나온 김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재정형편을 물어봤다.

“정기적으로 후원을 해주시는 회원 700여 명이 지난해에 모아준 돈은 3억 원 정도입니다. 많은 분이 성심성의껏 도와주시지만 계획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하려면 지금의 열 배는 돼야 해요.”

전화 02-2692-9978. 홈페이지(www.worldsharp.net)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문화일보 2012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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